삼성전자 종합기술원 박성준 전문연구원(오른쪽)과 정현종 전문연구원이 ‘꿈의 신소재’라는 그래핀 모형과 웨이퍼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기존 반도체 칩보다 100배 이상 빠른 칩을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기초 소자를 개발했다. ‘꿈의 신소재’라 불리는 ‘그래핀(Graphene)’으로 만든 소자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박성준(41) 전문연구원 팀의 연구 결과다. 이는 17일(현지시간)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학술지 ‘사이언스’ 온라인판에 실렸다. 인쇄본에도 곧 게재될 예정이다.
연구의 골자는 ‘그래핀을 활용해 트랜지스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핀 트랜지스터는 지금의 반도체 트랜지스터보다 동작 속도가 수백 배 빠르다. 이는 곧바로 칩의 속도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칩은 아주 작은 트랜지스터를 수십억 개 배열한 것이 다.
과학자들은 그래핀을 잘 활용하면 훨씬 빠른 트랜지스터와 칩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일찌감치 주목했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그래핀 트랜지스터 개발 경쟁이 붙었다. 이 경쟁에서 삼성전자 연구진이 개가를 올린 것이다. ‘그래핀에 반도체를 붙인다’는 아이디어 덕이었다. 트랜지스터를 만들려면 전자를 붙잡아 두는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래핀 안에서는 이게 쉽지 않았다. 그러던 것을 그래핀에 실리콘을 접합해 ‘쇼키(Schottky) 장벽’이란 것을 만들고, 이 장벽의 높이를 댐의 수문처럼 올렸다 내렸다 함으로써 전자를 붙잡았다 풀어줬다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 트랜지스터를 ‘배리스터’라 이름 지었다. 배리스터는 ‘장벽’을 뜻하는 ‘배리어’(barrier)와 ‘트랜지스터’의 합성어다.
박 연구원은 “팀의 전공이 다양하다 보니 그때그때 부닥친 문제를 더 잘 풀어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학문 융합의 힘’이 세계 최초로 그래핀 트랜지스터를 개발하는 원동력이었다는 얘기다. 박 연구원은 서울대 화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를 받았다. 종합기술원 연구팀은 박 연구원을 포함해 모두 7명으로 물리·화학·재료공학 등 다양한 분야를 전공했다.
◆그래핀(graphene)= 탄소원자 한 층으로 이뤄진, 아주 얇은 막 형태의 물질. 열과 전기를 잘 전달하며, 같은 두께의 강철보다 100배 이상 단단하다. 영국 맨체스터대 안드레 가임(54) 박사 등이 흑연에서 그래핀을 떼어내는 방법을 고안해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한국인인 미국 컬럼비아대 김필립(45) 교수가 이 분야 세계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김 교수는 이번 박 연구원의 논문에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